학원서 수업받던 여학생, 수상한 강사 행동에…


서울 강남의 유명 입시학원 강사가 4년간 여학생들의 특정 신체부위를 몰래 촬영해 보관하다 경찰에 붙잡혔다.

청주 청남경찰서는 9일 여학생들의 신체 부위를 촬영한 혐의(성폭력처벌 등에 관한 법률위반 등)로 서모(40)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
서씨는 2008년 7월부터 지난달 21일까지 서울과 청주의 학원에서 강사로 근무하면서 초소형 카메라를 이용, 자신이 가르치는 여학생 40명의 신체 일부를 촬영했다.
~~
그는 강의실에서 학생들이 문제를 풀 때 휴대전화를 만지는 척하다 초소형 카메라나 캠코더를 책상 밑으로 넣었다. 같은 수법으로 상담실에서 다른 강사와 상담하는 학생들을 촬영하기도 했다.
~~
서씨는 여자 화장실 몰카 촬영을 위해 화분을 변기 주변으로 옮겨놓고 카메라를 설치하는 치밀함을 보였으며, 엘리베이터·커피숍·학원 통학버스 등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촬영했다.
~~
서씨가 이런 방법으로 모은 몰카 사진이나 동영상은 400여개에 달했다. 그의 컴퓨터에는 미성년자의 성행위 장면이 담긴 동영상이 저장돼 있었다고 경찰은 밝혔다.

경찰에서 서씨는 “처음에는 호기심에 시작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중독된 것 같다”고 진술했다. 서씨의 변태 행각은 그의 행동을 수상히 여긴 한 학생이 아버지에게 알리면서 덜미를 잡혔다.

북 장웅 IOC 위원, "남측 선수에 금메달 걸어줘서…"

북 장웅 IOC 위원, "남측 선수에 금메달 걸어줘서…"


북한 출신의 장웅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이 남측의 양학선 선수에게 금메달을 걸어줘 기쁘다고 말했다고 미국의 소리 방송이 보도했습니다.

장 위원은 이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남자 체조 도마 결승에서 우승한 양학선 선수에게 금메달을 걸어준 것에 대해 스포츠는 정치와는 별개이고 우리 민족 성원이 금메달 따면 기쁘고 좋은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
장 위원은 또 이번 런던올림픽에서 북한 선수들이 잘 싸워 1992년 바르셀로나 이후 처음으로 성적이 좋았다며 금메달 하나만 추가하면 역대 최고의 성적을 거둘 수 있다는 기대를 내비쳤습니다.

비키니녀 볼 생각에 수영장 알바 알고 보면


처음 누군가를 만나면 '차가울 것 같다, 조용할 것 같다' 등의 첫 인상이 자리잡는 경우가 많은데, 마찬가지로 아르바이트도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OO할 것 같다'는 선입견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우리가 기대했던 바와는 전혀 다른 반전을 보여주는 아르바이트도 있다. 9일 아르바이트 전문 포털 알바인이 두 얼굴을 가진 아르바이트를 소개하니, 첫 출근 때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참고하자.

■편할 것 같지만, 절대 편하지 않은 아르바이트

TV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극을 이끌어 가는 주 · 조연 배우뿐만 아니라 각 장면의 틈새를 채워주는 '엑스트라(보조출연자)'를 쉽게 만날 수 있다. 보통 TV 드라마에 등장하는 엑스트라들은 길을 걷거나 이야기를 나누는 등 간단한 연기를 하는 탓에, 많은 사람들이 쉽고 재미있는 알바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끝없는 기다림과 배고픔, 요즘 같은 날씨에는 더위와의 싸움이 요구되는 아르바이트다.

우선 엑스트라들은 미리 촬영장에 도착하여 촬영 준비가 완료될 때까지 대기해야 한다. 1~3시간은 기본이고 많게는 7~8시간까지 기다리기도 한다. 야외에 별도의 대기실이 없고, 지속적으로 이동하며 찍는 경우가 많아 체력소모가 크다. 또한, 연기 전공자가 아닌 이상 연기가 어색할 수 밖에 없어 NG를 내지 않기 위해서는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오랜 시간을 들여 같은 장면을 여러 각도에서 찍는 등 시간과 체력적인 소모가 커 만만히 볼만한 아르바이트가 아니다.

편할 것 같지만 편하지 않은 알바 두 번째는 '빵집 알바'다. 진열과 판매가 주 업무이기 때문에 빵집 알바를 쉽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빵 제조여부에 따라 알바생의 업무 강도가 크게 달라진다. 이미 만들어진 빵을 판매하는 경우에는 진열 및 판매, 간단한 음료 제조, 가게 관리 등을 맡아 비교적 일이 수월하다.

그러나 직접 빵을 제조하는 매장에서는 가게의 위생 상태에 대해 더욱 신경을 써야 하고, 밀가루 등의 재료도 직접 운반해야 한다. 또한, 제품명과 들어가는 재료, 맛, 가격, 각기 다른 포장법을 반드시 익혀야 한다. 더불어 팥빙수와 같은 시즌 별 메뉴도 판매하고, 다양한 할인 혜택도 사전에 숙지해야 해 알바생은 더욱 바빠진다.

■눈 호강할 것 같지만, 마냥 그렇지 않은 아르바이트

푹푹 찌는 폭염에 알바생들이 시원한 아르바이트를 찾아 헤매고 있다. 최고의 알바는 에어컨이 가동되는 사무직 알바지만, 물놀이도 즐기고 돈도 벌 수 있는 '워터파크', '수영장 알바'도 인기를 끌고 있다.

더위를 이길 수 있을뿐더러 몸매를 드러낸 이성을 만날 수 있어, 눈 호강을 기대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워터파크도 워터파크 나름. 초여름부터 북적거리는 유명 워터파크는 젊은이들이 많이 찾아 비슷한 연령대의 이성을 쉽게 만날 수 있지만, 지역에 따라 가족 단위의 관광객들이 더 많이 찾는 곳도 있다.

'더위 해결'과 '눈 호강'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싶다면, 근무지에 대해 미리 조사해보는 것이 좋겠다. 이밖에 수영 강습생이 늘어나면서 안전 요원, 수영장 관리 등을 위해 알바생을 많이 뽑는다. 동네 문화센터에서 근무한다면 기대는 버리는 것이 좋다. 비키니 미녀는 찾아볼 수 없고, 어린 10대와 30대 이상의 회원들을 더 쉽게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흔히들 '불금'이라고 부르는 금요일 밤이 되면 강남과 홍대 등지의 클럽은 젊은이들로 가득 찬다. 불금을 즐기기 위해 다들 한껏 꾸미는 만큼, '클럽 알바'를 하면 멋진 이성을 볼 기회가 많다. 하지만 눈이 즐거운 것은 잠시, 큰 음악 소리와 담배 연기로 가득 찬 환경에서 오래 일하기는 쉽지 않다.
~~~
우선 홀 담당의 경우 깨진 병부터 담배 꽁초, 오물 등으로 가득한 바닥 청소와 빈 잔 수거, 화장실 관리 등을 맡게 된다. 바에서는 칵테일 제조, 락커룸 알바는 짐 정리 업무가 주어진다. 클럽 알바를 하다 보면 멋진 이성보다는 엄청난 양의 쓰레기와 다양한 유형의 취객을 만나게 된다. 즐기는 건 한 순간이고 정신 없이 일하다 보면, 어느새 동이 트는 것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
■반전을 바라지만, 반전 없는 아르바이트

예외와 반전이 없는 아르바이트, 바로 '택배 상하차 알바'다. 물류창고 등에서 택배를 싣고 내리는 업무를 맡는다. 인터넷에 택배 상하차에 대해서 검색해보면 괴로움을 토로하는 수많은 후기를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일자리를 쉽게 구할 수 있고, 당일에 급여를 지급하기도해 지원하는 남성들이 많다. 처음에는 힘 좀 쓴다는 생각에 쉽게 도전하지만, 지옥의 알바라 불리는 만큼 노동의 강도가 세다.

주어진 택배 물량을 채우기 위해서는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을 만큼 바쁘게 움직여야 하는데, 문제는 택배의 종류와 무게, 크기가 매우 다양하다는 것이다. 가벼운 잡화부터 생수, 쌀 등은 기본이고 역기, 타이어, 냉장고 등 온갖 물품을 옮겨야 한다. 택배 상하차 알바를 경험한 뒤에 정신차려 대학 갔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을 정도. 택배 상하차 알바를 생각하고 있다면 마음을 단단히 먹고 가는 게 좋겠다.

"축구 '동메달' 따도 군대에 가야할 줄이야"


한국 남자 축구대표팀이 한국시간으로 11일 오전 3시45분에 일본과 동메달을 두고 3·4위전을 치르게 됐다. 한일전이란 숙명적 대결이란 점에서 국민들이 거는 기대가 크다. 선수들의 입장에서도 이번 대회가 중요하다. 대표팀 선수들이 병역특례를 받을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양낙규 기자의 Defense Club 바로가기

하지만 병역혜택을 두고 논란이 많다. 대표적인 것이 올림픽에 출전해 동메달을 획득해도 단체전 경기에서 후보로 남아 출전하지 못한 선수들은 군대에 가야한다는 점이다.

병역법 시행령 제47조의2(예술ㆍ체육요원의 공익근무요원 추천 등) 1항 4호에는 “올림픽대회에서 3위 이상으로 입상한 사람(단체경기종목의 경우에는 실제로 출전한 선수만 해당한다)”이라고 병역 면제 조건이 명시돼 있다. 지금까지 1976년부터 현재까지 7월말 현재까지 병역면제 혜택을 받은 사람은 총 829명이다. 병역면제 혜택을 받게되면 4주간 군사기초훈련을 받고 선수나 지도자로 종사하면 된다.

하지만 김기희 선수는 한일전에 출전하지 못할 경우 한국이 동메달을 따도 병역특례를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번 경기를 위해 똑같이 훈련을 받고 경기에 투입될 준비를 해 왔지만, 경기 상황과 전략상의 필요에 의해 후보선수로 남았기 때문에 병역특례에서 제외된다면 형평성 논란이 있을 수 있다.

병역면제 혜택의 폭도 고무줄 기준이었다. 2002년 참여한 선수와 올해 참여한 선수의 병역혜택이 다르다. 지난 2002년 월드컵 당시 한국이 사상 처음 16강 진출을 이뤄내자 병역법 시행령을 고쳐 출전 선수들에게 병역면제 혜택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월드컵선수들에게만 해당돼 아시안게임 등 국제행사에 참여한 선수들에 대한 형평성 문제가 제기돼 2007년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에 병역특례를 한정하는 내용으로 재개정되기도 했다.
~~~
그렇다고 김기희 선수의 병역특례를 위해 한일전에 출전을 시키기도 힘들다. 한국이 한일전에 패할 경우 선수들의 부담감은 물론 운동선수들의 병역특례를 어느 정도 수긍하던 여론이 싸늘하게 돌아설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일각에서는 '국방의 의무'를 면제할 수 있는 혜택을 스포츠선수에게만 주는 것에 대한 논란도 일고 있다. 국가 경쟁력과 이미지를 높이는 학계나 연구원 등은 제외됐다는 것이다.
~~~
산업체 병역특례로 기업에서 근무하고 있는 김씨(27)의 경우 대학원 시절 반도체에 관한 연구로 미국 회사에서 스카웃제의까지 받았다. 하지만 병역문제로 국내에 머물러야 했다. 반면에 박주영선수의 경우 그동안 2008년 영주권 제도가 없는 모나코로 이적하면서 장기 체류권을 받아 합법적으로 입대를 연기해왔다. 한일전에 승리할 경우 박주영선수에 대한 논란은 수그러들 것으로 보이지만 패할 경우 이 논란도 더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 박주영선수는 장기체류권을 받아 2020년이 되는 37세까지 입대를 미룰 수 있다. 장기 체류권을 받으면 병역을 연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주권이 없어 장기체류권을 주는 나라는 벨기에 뿐만 아니라 모로코, 리비아, 알제리, 이란, 오세아니아 등이 있다. 설기현도 2000년부터 2004년까지 주필러리그 앤트워프와 안트워프에서 뛰었다.

유럽 빅리그 진출을 원하는 유망주의 경우 벨기에를 경유하면 유럽 축구에 적응하면서, 병역까지 동시에 해결하는 길을 찾을 수 있다. 특히 병무청은 외국에 3년이상 거주해야 '국외이주사유 국외여행 허가'를 내주기 위해 병역법 시행령 개정도 추진 중이지만 박주영 선수는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병무청 관계자는 "국익차원에서 병역면제혜택은 스포츠와 예술분야로 한정하고 있으며 학문 등 분야에 종사하는 전문연구요원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北리설주는 매력적” 말했던 日요리사 결국…

북한이 일본인 요리사 후지모토 겐지(가명)의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관련 발언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8일 마이니치신문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전속 요리사였던 후지모토가 지난 4일 북한에서 중국 베이징에 도착했을 때 김정은 제1위원장과 부인 리설주에 대한 인상을 말한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자 북한 간부로부터 ‘분개하고 있다.’는 내용을 전달받았다는 것이다.
~~
당시 후지모토는 김 제1위원장에 대해 “사람이 매우 커졌다.”, 리설주에 대해서는 “예쁘고 매력적”이라고 했다. 최고 지도자 가족에 대한 평가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북한이 호의적인 발언에도 거부감을 드러내며 ‘입단속’을 한 것으로 보인다.
~~~
후지모토는 평양 시민들의 인상에 대해 “(평양) 사람들의 표정이 밝아졌고, 거리의 분위기가 바뀌었다.”고만 전했다. 그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일본 민영방송인 TBS와 오는 25일까지 700만엔(약 1억원)의 전속 계약을 맺었다.”며 “이를 위반할 경우 1000만엔을 변상해 줘야 해 당분간 일본과 외국 언론과의 인터뷰를 삼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후지모토는 1989∼2001년 북한에서 김 위원장의 전속 요리사로 일하다 귀국했다. 어릴적 김정은 제1위원장과 친했고 김정일 위원장 가족에 대한 일상 생활을 책으로 펴냈다. 지난달 21일부터 지난 4일까지 북한을 방문해 김 제1 위원장과 부인 리설주를 만났다.

Disgruntled young N. Koreans could drive change


‘Market generation’ has inkling of capitalism, Korean pop culture; seen less loyal to dynastic ruler


Lee Ye-eun vividly remembers the poverty her family went through in North Korea in the 1990s, during a famine believed to have cost some 2 million lives.

“Like other families, my family was living from hand to mouth and went to the nearby mountain each day to pluck grass to make porridge. My younger brother died of malnutrition,” Lee, 20, told The Korea Herald.

“My mother sold noodles at a marketplace to feed our family. The education I received was intended only to worship the dynastic ruler,” said the university student, who arrived in the South in 2007 after crossing the border with China in 2004.

Deprived of state benefits such as proper education, food rationing and medical care, her underfed peers in the communist state are thought to be less loyal to the dynastic ruler than the older generations.

Many of them have non-conformist ideas, albeit inwardly as they experienced the devastating famine, known as the “Arduous March” in the mid- and late 1990s, experts said. International isolation following the collapse of the Soviet Union in 1991, bungled economic policies and flooding caused one of the country’s worst famines.

These people in their early 20s have now started climbing up the military and social ladders, brightening the prospect of change in the reclusive state.

“Unlike their parents’ generations that benefited from support programs by the North’s ruling Workers’ Party or its leader, the young generations were not fed by the state but by their parents who made a meager living through market activities,” said Ahn Chan-il, director of the World North Korea Research Center.

“They, thus, have no loyalty (for their leader). They may be critical of the current regime and could be a destabilizing factor for the ruling elites.”

Dubbed the “market generation,” they apparently have an inkling of the capitalist mechanism as their parents heavily relied on the market to bring home the bacon following the collapse of the food rationing system ― the critical source of public support for the autocratic leadership.

Before its national founder Kim Il-sung died in 1994, the North’s overall economic conditions were manageable with the rationing program working to secure much respect for the ruler.

Being exposed to South Korean pop culture through smuggled DVDs secretly circulating at marketplaces, some of them have also realized that they were deceived by the negative propaganda against their southern brethren.

“We had been brainwashed and thought that a capitalist society was really bad, and we could not live in it. That was before I watched Korean dramas and movies,” said Kim Moses, who was born in the North in 1987 and defected to the South in 2010.

“We came to terms with the reality that what was said there was all wrong. We had heard that the South was really poor, a totally different image reflected in the South Korean dramas.”

The discrepancy between what they heard and the reality led to their frustration and discontent, which further deepened amid a tightening state control over people’s economic market activities.

“Many merchants were not successful as they had no job skills given that they had relied only on the food rationing program. Adding insult to injury, there were many restrictions at the marketplace, and our stuff was all confiscated in some cases,” said Kim.

“Many were obviously disgruntled, saying that even though they did not offer us food rations, they took away our stuff and even punished us.”

Such dissatisfaction was deeper among those who had no other option but to temporarily move to China to make a living, Kim recalled.

“Along the border areas, they crossed the river into China to get jobs, hoping to return soon to support their families. When caught, their money and all properties were seized. On top of that, they faced severe punishments,” said Kim.

“Oftentimes they just became stranded in a foreign country.”

With the growing displeasure over the state governance, the young generation could become the driving force for a much-needed change in the North some time later, observers said.

“In a situation where the North is forced to make some overhaul (for its survival), these people could spearhead the internal change. But opening up completely is still far from the reality now,” said Jeung Young-tae, senior researcher at Korea Institute for National Unification.

Jeung also noted that particularly in the military, the disgruntled generation could cause problems such as desertions and other aberrant behavior.

“Their discontent may deepen as the rationing system even in the military crumbles. They could leave their bases, particularly in the units near the border with China and sell their military property at marketplaces,” he said.

“This sort of corruptive behavior may not lead to some sort of coup in the short term, but we cannot rule out the possibility.”

Despite the anticipation about their role in bringing about a change in the North, some experts say that there is not much we can expect from the young generation.

“Basically, they did not receive proper education. Therefore, it is somewhat difficult to believe that they can make any critical political moves. They would rather try to climb up the social ladder while struggling to conform to the existing system,” said Dong Yong-seung, a North Korea specialist at Samsung Economic Research Institute in Seoul.
불만 많은 북한 젊은이들, 변화 불러올까?

근처 산에서 풀을 뽑아다가 쑤어 먹은 풀죽, 영양실조로 죽은 동생, 지도자를 찬양하는 내용뿐인 교육, 이것이 2007년 탈북한 이예은씨가 기억하는 1990년대의 북한이다.

제대로 된 교육, 의료 혜택도 누리지 못하고 식량 배급도 받지 못한 북한의 빈곤층은, 이전 세대만큼 지도자에게 충성하지 않는다.

북한의 국제적인 고립, 서투른 경제정책, 그리고 자연재해는 심각한 기근을 초래했다. 1990년 중, 후반, “고난의 행군”을 겪은 20대 청년들은, 이제 사회 지도층이 되어 북한의 미래를 바꿀 것이라는 새로운 전망을 준다.

세계 북한 연구센터 소장 안찬일씨는 “지금 지도층으로 오르려는 세대는 기성세대와는 다르게 국가의 혜택을 직접적으로 받지 못했고, 부모님의 시장 활동으로 근근이 살아왔다”고 말했다. 또한 “따라서 지도자에 대한 충성심이 없으므로, 북한의 기성 지도층을 무너뜨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
“장마당 세대”라고 불리는 이 젊은 세대는, 부모 세대의 시장 활동으로 자본주의의 개념을 눈치 채고 있고, 남한에서 밀입된 드라마, 영화에 의해 북한의 왜곡된 실상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 
~
이 년 전 탈북한 김모세씨는 “자본주의 사회가 나쁜 것이라고 세뇌 당했으며, 나중에는 남한이 드라마에서 비춰지는 것과는 반대로 가난하고 불우한 나라라고 배웠다”고 말했다.

배운 것과 현실의 차이는 사람들의 불만을 낳았고, 국가는 국민들의 시장 활동마저 옥죄기 시작했다. 직업에 필요한 기술을 익히지 못한 상태에서, 식량 배급도 이루어 지지 않았고, 국가의 통제, 탈취, 처벌만이 있을 뿐이었다. 
~
사람들은 살기 위해 중국으로 밀입국일 시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김씨는 “사람들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중국 국경선을 넘었다”며 “실패할 때에는 엄중한 처벌과 함께 가진 것을 모두 빼앗겼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국가에 대한 불만이 더해감에 따라, 젊은 세대가 장차 북한의 변화를 이끄는 추진력을 줄 수 있다고 말한다.

정영태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특히 군대에서 젊은 세대가 탈영 등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러한 행동이 곧바로 쿠데타 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낮기는 하지만 아예 없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젊은 세대로부터 기대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고 말했다.

삼성경제연구소의 동영승 연구원은 젊은 세대의 교육 수준이 높지 않기 때문에 변화에 필요한 정치적인 행보를 보이기 보다는 이미 존재하는 사회계층 내에서 좀 더 높은 위치에 오르려고 시도할 확률이 높다고 꼬집었다

日 “또 너냐” 韓 “이번엔 복수”… 너무 잔인한, 사상 최악의 한일전




물러설 곳은 없다. 벼랑 끝 승부다. 한국과 일본의 반세기 넘는 축구전쟁은 마침내 올림픽 메달 싸움으로 비화됐다.

한국은 8일 영국 맨체스터 올드 트래포드에서 열린 2012년 런던올림픽 남자축구 준결승전에서 브라질에 0대 3으로 완패했다. 같은 날 영국 런던 웸블리에서 열린 다른 준결승전에서는 일본이 멕시코에 1대 3으로 무릎을 꿇었다.

약속이라도 한 듯 나란히 결승 문턱을 넘지 못한 한국과 일본은 오는 11일 웨일스 카디프시티 밀레니엄 스타디움에서 단판승부로 동메달의 주인을 가린다. 사상 첫 올림픽 메달 대결인 만큼 어느 때보다 치열한 혈투를 벌일 것으로 보인다.

승자는 동메달, 패자는 노메달… 너무 잔인한 한일전

한일전은 아시아를 대표하는 스포츠 라이벌전이다. 그 중에서 성인 남자 축구는 한일전의 백미다. 한국과 일본은 1954년 3월7일 스위스월드컵 예선(한국 5대 1 승)에서 처음 대결한 뒤 58년간 75번 충돌했다. 역대 전적(40승22무13패)에서는 한국이 주도권을 잡고 있지만 판세는 일본이 대규모 투자를 시작한 1990년대 중반부터 접전 양상이다.

두 팀의 경쟁은 동반 성장으로 이어졌다. 일본은 1998년 프랑스월드컵에서 뒤늦은 본선 신고식을 치렀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는 한국과 일본이 나란히 본선 첫 승을 거뒀고 각각 4강과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서는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을 동반 달성했다. 이어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는 나란히 결승 문턱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축구의 양대 국제대항전인 월드컵과 올림픽 본선에서 한일전이 성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성인 남자축구에서 한일전은 월드컵과 올림픽의 대륙 예선이나 아시안컵 및 아시안게임 등 대륙대항전, 정기전이나 친선경기 등 단일경기로만 치러졌다. 같은 대륙끼리의 승부를 피하는 국제대항전 본선 대진 편성의 보편적 방식에 따라 한국과 일본은 나란히 4강에 오르지 않는 한 만날 수 없었다.

유럽과 남미보다 약체로 분류되는 한국과 일본의 전력을 감안할 때 동반 4강 진출을 다시 기약하기 어렵다. 이번 런던올림픽 3·4위전이 한일전 사상 가장 치열한 혈투를 예고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승자는 동메달 이상의 값진 기록을 남길 수 있지만 패자는 메달 획득 실패 이상으로 부담스러운 멍에를 뒤집어쓰게 될 것으로 보인다.
~~~
“너를 잡아야 내가 산다” 여론은 벌써부터 신경전

한국과 일본 여론은 벌써부터 신경전에 돌입했다. 유례없는 승부의 중압감이 여론을 자극한 것이다. 동아시아 정세와 역사 문제 등으로 오랜 세월 반목을 이어온 양국 여론은 인터넷 포털사이트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등에서 서로를 향한 자신감과 부담감을 동시에 쏟아냈다.

일본 여론은 대부분 한국과의 대결 자체에 대한 부담감을 드러냈다. 8일 오전 일본 야후 네티즌들은 “한일전이란 이겨도 져도 불쾌한 기분(Fxxh****)”이라거나 “왜 매번 한국인가. 왜 하필 또 한국인가. 이상하고 몹쓸 운명의 장난(kpop_tokaK****)”이라고 토로했다.

이들은 우리나라 선수들이 한일전에서 맹렬하게 돌변한다는 점과 올림픽 동메달까지 주어지는 병역 혜택을 위해 사력을 다할 것이라는 점 등을 이유로 쉽지 않은 일전을 예상했다. “런던올림픽 마지막 경기에서 한국을 만난 것은 결승 진출 실패에 따른 벌칙(roc****)”이라는 자학적 의견도 눈길을 끌었다.

우리나라 여론은 한국 축구 사상 첫 올림픽 메달 획득과 선수들의 합법적 병역 혜택에 대한 염원이 많다. 이와 함께 지난해 8월 한일전 사상 두 번째로 세 골 차 완패를 당한 ‘삿포로 대참사’와 같은해 1월 아시안컵 준결승전에서 당한 승부차기 패배 등 최근 잇단 부진을 만회해야 한다는 의견도 쏟아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