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도박에 빠진 미국^

미국에서 도박은 한때 불법이고 비도덕적인 행위였다. 그러나 이제 인기 높은 오락의 하나로 자리 잡았고 연간 900억달러(약 103조3200억원)의 산업으로 발전했다. 특히 주 정부를 비롯한 지방자치단체, 인디언 보호지역의 핵심 수입원으로 부상했다. 미국 50개 주 중에서 43개 주와 워싱턴DC가 복권 사업으로 연간 180억달러를 벌어들이고 있다. 도박 중독자가 사회 문제로 등장하고 있으나 도박 산업은 날로 번성하고 있다. 디지털 시대에 맞춰 온라인 포커 등 인터넷 도박에 빠져드는 사람이 급증하고 있다. 도박에 빠진 미국 사회의 모습을 심층 진단해 본다

◆복권과 도박 열기

미국에서 지난 4월 18일은 ‘메가 밀리언스’로 불리는 사상 최고의 복권 당첨자가 발표된 날이었다. 당시 미 인구 3분의 1가량인 1억명가량이 복권을 샀다.

복권 당첨자는 6억5600만달러(약 7462억원)를 받게 돼 있었다. 이날 당첨번호는 02, 04, 23, 38, 46, 23이었다. 공교롭게도 이 번호는 3장이 팔렸다. 캔자스, 메릴랜드, 일리노이주에서 1명씩 당첨자가 나왔다. 캔자스와 메릴랜드는 복권 당첨자가 자신의 신원을 공개하지 않을 수 있도록 법적인 보호를 받고 있다. 일리노이주에서는 당첨자가 자신의 신원을 밝혀야 한다.

일리노이주에서 당첨된 사람은 머얼 버틀러로 1달러짜리 복권 3장을 샀고 그중 하나가 1등에 당첨됐다. 올해 62세의 은퇴한 컴퓨터 기술자였던 그는 자신의 몫으로 2억1870만달러(약 2510억원)를 받았다. 메가 밀러언스 복권으로 지난 10년 사이 1억달러(약 1148억원) 이상의 당첨금이 나온 사례는 49차례에 이른다. 현재 미국에서 메가 밀리언스를 포함한 복권 판매를 금지하고 있는 주는 50개 주 중 7개 주에 불과하다. 이 복권 판매 수입의 3분의 1가량이 주 정부의 재정 수입이 된다. 2001년 복권 판매로 주 정부가 벌어들인 수입은 178억달러에 달했다고 미 의회 전문지 CQ 리서처 최신호가 보도했다.

20세기까지만 해도 카지노는 라스베이거스가 있는 네바다주를 제외한 모든 주에서 불법이었다. 그러나 지금 카지노를 합법화하고 카지노 도박장을 운영하는 주는 38개 주나 된다. 카지노 역시 주 정부 등 지자체의 주요 수입원이다. 지난해 주 정부가 카지노를 통해 얻은 세수는 무려 79억달러였다.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사회적으로 백안시됐던 도박과 카지노가 미국인이 즐기는 오락의 하나로 굳어져가고 있다. 미 정부 당국이 세수를 늘리려는 목적으로 도박, 카지노, 복권에 대한 규제를 앞다퉈 풀면서 도박 산업이 날로 번창해가고 있는 것이다.

주 정부는 도박 수입에 높은 세율을 적용하고 있다. 펜실베이니아주에는 10곳의 카지노가 있으며 이곳에서는 슬롯머신으로 딴 돈의 55%를 세금으로 내야 한다. 또 탁자에서 이뤄지는 도박에서 딴 돈의 16%를 세금으로 납부해야 한다. 펜실베이니아주는 카지노 시설에서 거둬들이는 세금 수입이 지난해에 15억달러를 기록했다. 미국에서 세금을 올리기는 쉽지 않다. 조세 저항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도박이 증세의 대체 수단으로 등장했다. 도박에 무거운 세금을 부과해도 불평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그런 높은 세율의 세금을 내지 않으려면 도박을 하지 않으면 된다.

그렇지만 복권은 사정이 다르다. 복권은 상대적으로 학력이 낮고 소득이 낮은 사람이 더 많이 사고 있다. 미국에서 복권 구매자를 조사한 결과 특정 기업에서 임원보다는 평직원이 압도적으로 높은 비율로 복권을 사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각박한 경제 현실에 지친 서민이 복권 당첨에 한 가닥 희망을 걸고 있는 셈이다. 주 정부가 부족한 세수를 메우기 위해 증세 대신 복권 사업을 장려하면 복권을 상대적으로 많이 사는 저소득층이 더 많은 세금을 내는 결과가 초래된다. 로드아일랜드, 사우스다코다, 웨스트버지니아는 복권 판매 수입이 주 정부 재정 수입의 7%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나머지 주는 대체로 1% 안팎에 불과하다.

미국의 주 정부는 대체로 카지노를 통해 세수를 늘려가고 있다. 카지노 옹호론자는 경제난과 일자리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서 카지노가 일자리 창출에 크게 기여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지난해 상업 카지노에서 일하는 종업원은 33만9098명으로 집계됐다. 또 이들 종업원에게 지급된 임금은 129억달러에 달했다. 주 정부가 지난해 카지노에 부과한 세금 총액은 4억650만달러로 전년도에 비해 6%가 늘어났다. 미국 상업 카지노에서 지난해 고객이 쓴 돈은 9억5870만달러로 나타났다.

◆미국 인디언 보호 지구는 카지노의 온상

미국에서 가장 큰 카지노는 도박의 메카 라스베이거스에 있지 않다. 코네티컷주에 있는 폭스우즈 리조트 카지노는 연면적으로 세계 최대를 자랑했던 미국 국방부(팬타곤)보다 더 면적이 넓다. 뉴욕시와 보스턴시 중간쯤에 있는 이 카지노 운영권자는 인디언이다. 미국 정부는 사회적인 약자층인 인디언에 대한 재정 지원을 위해 인디언 보호지구에 카지노를 운영하도록 허가하고 있다. 인디언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수익 사업을 통해 인디언 보호지역을 독자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카지노 운영권을 주고 있다.

미국에서 흔히 카지노는 인디언 카지노와 상업 카지노로 구분된다. 인디언 부족이 운영하는 카지노는 미국 전역에 걸쳐 459곳, 상업 카지노는 492개다. 인디언 카지노가 상업 카지노보다 약간 적다. 그러나 인디언 카지노 수입은 지난해에 267억달러로 상업 카지노의 356억달러에 비해 적은 것으로 집계됐다. 인디언 카지노는 상업 카지노에 비해 지리적으로 좀 더 불편한 곳에 있지만 시설 측면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미국에는 공식적으로 등록이 된 554개의 인디언 부족이 있다. 이 중 절반가량인 247개 부족이 29개 주에서 카지노를 운영하고 있다. 캘리포니아, 코네티컷, 플로리다, 오클라호마 주에 있는 인디언 카지노는 인구 밀집 지역에 인접해 있다. 그렇지만 알래스카, 몬태나 주에 있는 카지노는 시골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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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림길에 선 온라인 도박

일리노이주는 올해 3월 인터넷을 이용해 복권을 판매하기로 했다. 인터넷으로 복권을 살 수 있게 하면 60만∼1백만명의 신규 참여자가 생길 것으로 주 당국은 내다봤다. 일리노이주 의회는 온라인 복권 판매를 허용하는 내용의 법을 제정했다. 그러나 미 연방 정부의 법무부가 제동을 걸고 나섰다. 현재 미국에서 인터넷을 이용한 복권 판매와 인터넷 포커 등 온라인 도박 허용 여부가 사회적인 쟁점으로 부각돼 있다.

미국 영토를 벗어난 제3국에 호스트를 두고 운영하는 온라인 포커에 2005년 한해 동안 25억달러가 투입됐다. 미 의회는 2006년 온라인 도박을 금지하는 법을 부랴부랴 제정했으나 온라인 도박이 여전히 성행하고 있다. 미국 사법 당국은 온라인 도박을 대대적으로 단속하고 있다. 미국의 카지노 업계도 온라인 도박을 규제해달라고 정부와 정치권에 파상적인 로비 공세를 펴고 있다. 미 연방 정부는 온라인 도박 허용 여부를 주 정부 허가 사항으로 넘길지 고민하고 있다.

네바다주는 온라인 도박을 허용키로 하고 도박장 개설 허가 신청을 받고 있다. 뉴욕주는 온라인 복권 게임 등 일부 제한적으로 온라인 도박을 허용하고 있다. 캘리포니아, 뉴저지, 아이오와 주는 온라인 도박 허용 문제를 놓고 지방 의회에서 격한 논쟁을 벌이고 있다. 도박은 중독자를 양산하는 등 심각한 사회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특히 인터넷 도박이 공식적으로 허용되면 인터넷 중독뿐 아니라 인터넷 도박 중독자가 속출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도박을 합법적으로 허용하고 전자 상거래가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인터넷 도박을 언제까지 금지할 수 있을지 불확실한 게 현실이다.